태미 덕워스 (Tammy Duckworth)의 자기소개서
많은 입후보자들과 공직자들은 잇슈에 대해 올바른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필요할 때, 너무나 많은 정치인들이 서민의 옹호자가 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밥상에 음식을 올려놓기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저 또한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GI 법안의 도움을 받아 대학을 마쳤고, 좋을 직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55세에 실직을 하셨고, 집안이 밑바닥부터 흔들렸습니다. 온 가족이 살림을 거들기 시작했는데,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셨고, 저는 학교가 파한 후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습니다. 강인한 노력, 푸드 스팸프, 자선기관의 도움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며, 삶을 다시 일으켰습니다. 이런 경험이 저로 하여금 매사에 실질적 해결책을 찾도록 제 자신을 훈련시켰습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하면서 저는 우선 사항가운데 하나로 산업기반, 교육, 직업훈련등에 대한 투자를 골격으로 하는 직업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저는 최고부유층 2%를 위해 만든 부쉬 감세조항을 폐지하고, 납세를 피해나가고 있는 대기업을 단속하며, 잘못된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믿습니다. 직업을 창출하고, 세법을 개혁하며,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규칙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헬리콥터가 폭격을 받고 떨어졌을 때, 저는 죽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제게 주어진 시간이 두번째 기회이고, “보너스 시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는 믿는 바를 위해 용감히 맞서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를 옹호할 자유가 제게 있다는 뜻입니다. 국방비 삭감, 국방부 내부의 낭비와 비효율성등에 대해 저는 독특한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태미 덕워스는 이라크 전쟁 참전용사이며 블랙허크 조종사인데, 그가 탔던 헬리콥터가 이라크에서 추락했다. 두발과 오른팔 기능의 일부를 잃어버렸고, 전투 수행중 부상으로 퍼플 하트 (Purple Heart) 무공훈장을 받았다. 2006년 일리노이주 원호처장이 되었고,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그녀를 미연방 원호처 차관으로 임명했다. 원호처 차관으로 재직하면서 재향군인의 복지와 노숙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힘썼다. 그녀는 육군소령인 남편 브라이언 (Bryan)과 하프만 에스테이츠에 살고 있다.







